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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TV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271회 줄거리
□‘뽀빠이’ 이상용 ‘올리브’ 같은 아내와의 운명적인 만남! 가족을 위해 피땀 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아버지 이상용!
1970년대 어린이들의 우상, 80년대 군인들의 맏형으로 큰사랑을 받았던 이상용! 뽀 빠이’를 닮은 그는 ‘올리브’같이 키 크고 늘씬한 아내 윤혜영씨를 고향 누나의 집에 서 우연히 만났다. 놓칠 수 없단 일념으로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결혼식을 올린 이상 용. 하지만 결혼 후 외판원 생활을 하며 생계를 꾸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청량 리에서 동두천까지 걸어 다니며 물건을 팔았지만 좀처럼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서른 살에 외판원을 그만두고 무작정 방송을 해야겠단 일념으로 MBC를 찾아왔다. 방송국 청소를 자청하며 얼굴을 알린 이상용. 각고의 노력 끝에 1973년 ‘유쾌한 청백전’의 출연 기회를 잡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으로 방송에 성공적으 로 데뷔했다. 그가 이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단돈 2만 원의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가난을 자식들에게는 대물림 할 수 없단 생각으로 이상용은 일에만 전념했다. 방송에 데뷔한 후 승승장구하던 이 상용은 1989년 ‘우정의 무대’ 진행을 맡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아버지가 많은 돈을 주고 가셨으면 지금의 저는 없어요. 제가 열심히 한 것은, 내 세대에서 가난과 돈 없는 것을 끝내야 되겠다. 우리 애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거든요” - 이상용 인터뷰 中
저는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노력하자. 정말 끊임없이 노력해서 이렇게 TV에 깜냥도 안 되는 내가 나올 수 있었고 이 나이까지 바쁜 거예요. 그래서 노력을 계속 하는 거예요.” - 이상용 인터뷰 中
자식들이 크는 모습을 볼 새도 없이 바빴던 이상용은 75세가 된 이제야 비로소 자식 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가족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아버지 이상용 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뽀빠이’ 이상용 ‘올리브’ 같은 아내와의 운명적인 만남! 가족을 위해 피땀 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아버지 이상용!
1970년대 어린이들의 우상, 80년대 군인들의 맏형으로 큰사랑을 받았던 이상용! 뽀 빠이’를 닮은 그는 ‘올리브’같이 키 크고 늘씬한 아내 윤혜영씨를 고향 누나의 집에 서 우연히 만났다. 놓칠 수 없단 일념으로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결혼식을 올린 이상 용. 하지만 결혼 후 외판원 생활을 하며 생계를 꾸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청량 리에서 동두천까지 걸어 다니며 물건을 팔았지만 좀처럼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서른 살에 외판원을 그만두고 무작정 방송을 해야겠단 일념으로 MBC를 찾아왔다. 방송국 청소를 자청하며 얼굴을 알린 이상용. 각고의 노력 끝에 1973년 ‘유쾌한 청백전’의 출연 기회를 잡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으로 방송에 성공적으 로 데뷔했다. 그가 이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단돈 2만 원의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가난을 자식들에게는 대물림 할 수 없단 생각으로 이상용은 일에만 전념했다. 방송에 데뷔한 후 승승장구하던 이 상용은 1989년 ‘우정의 무대’ 진행을 맡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아버지가 많은 돈을 주고 가셨으면 지금의 저는 없어요. 제가 열심히 한 것은, 내 세대에서 가난과 돈 없는 것을 끝내야 되겠다. 우리 애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거든요” - 이상용 인터뷰 中
저는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말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노력하자. 정말 끊임없이 노력해서 이렇게 TV에 깜냥도 안 되는 내가 나올 수 있었고 이 나이까지 바쁜 거예요. 그래서 노력을 계속 하는 거예요.” - 이상용 인터뷰 中
자식들이 크는 모습을 볼 새도 없이 바빴던 이상용은 75세가 된 이제야 비로소 자식 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가족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아버지 이상용 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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